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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는 멜라토닌 젤리, 어머니는 족탕 대야를 보내 왔다

출장에서 돌아온 동료는 멜라토닌 젤리를, 어머니는 고향에서 쑥을 넣은 족탕 나무 대야를 보내 왔다. 같은 잠 못 드는 밤에 두 문명이 두 개의 답을 내놓았다. 멜라토닌은 몸 대신 "어두워졌어!" 외치는 것이고, 족탕은 하루 종일 뛰던 마음을 정말로 멈추게 하는 것이다. 불면은 대개 잠의 문제가 아니라, 낮의 빚이 밤에 독촉하러 오는 것. 먼저 마음을 재우고, 그다음 눈을 재워라.

一一如是
··10분
#불면증#멜라토닌#족탕#한의학#산조인#황제내경#안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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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는 멜라토닌 젤리, 어머니는 족탕 대야를 보내 왔다

동료가 출장에서 돌아오더니 젤리 한 병을 던져 주었다. "미국 공항에서 샀어. 멜라토닌. 시차 적응 필수템이래." 그러고는 덧붙였다. "너도 먹어 봐. 자느라 힘들다며 언제나."

나는 그 병을 집으로 가져갔다. 흰색 병에 옅은 보라색 젤리, 라벨에는 melatonin이라는 작은 영어 단어 하나. 솔직히 말하면 약보다 사탕에 가까워 보였다.

그날 밤 반 알을 먹었다. 잠드는 건 확실히 조금 빨라졌다. 하지만 새벽 세 시에 또 깨었다. 그리고 유난히 생생한 꿈을 꾸었다. 회의 중인데 상사의 얼굴은 흐릿한데, 내가 지각했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눈을 떴을 때 가슴 어딘가가 조여 있었다.

남은 젤리는 서랍에 넣어 두었다.

어머니의 방법

거의 같은 시기에, 어머니가 고향에서 소포를 보냈다. 열어 보니 짙은 색 나무 대야 하나, 그리고 쪽지 한 장이 들어 있었다. 밤에는 발을 담가라, 쑥을 넣고. 물은 뜨겁게. 살짝 땀이 날 정도면 된다. 너무 오래 담그지는 말고.

쪽지 뒷면에는 한 줄이 더 적혀 있었다. 먼저 마음을 재우고, 그다음 눈을 재워라.

나는 전화로 웃었다. "요즘이 어느 세기인데, 나무 대야에 발 담그는 사람이 어딨어." 어머니는 서두르지 않고 대답했다. "할머니는 평생 하셨어. 아흔세까지 사셨어. 네 그 젤리는 평생 먹을 수 있니?"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날 밤 물을 끓여 대야를 침대 옆에 두었다. 쑥은 미리 우려 두었고, 물에서는 이름 붙이기 어려운 냄새가 났다. 마른 풀 같기도 하고, 어린 시절 외할머니 부엌에서 나던 냄새 같기도 한. 발을 담그는 순간 뜨거워서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천천히 익숙해졌다.

십오 분쯤 지나니 등에 땀이 살짝 배었다. 발을 닦고 이불에 들어갔고, 휴대폰은 보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보고 싶지 않았다.

그날 밤 잠이 어땠는지 솔직히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이불에 들어가기 전에, 몸 어딘가가 풀려 있었다는 것은 기억한다.

두 시스템의 차이

그 뒤 나는 이 두 가지를 제대로 찾아보았다.

멜라토닌은 우리 몸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호르몬이다. 뇌 속 송과체라는 작은 기관이 해가 지면 분비를 시작하며 몸에 알린다. "자야 할 시간이에요." 밖에서 멜라토닌을 보충하는 건, 몸 대신 "어두워졌어!" 하고 한 번 외치는 것과 같다. 시차 적응에는 정말 효과가 있다. 시차는 생체시계가 어긋난 상태이고, 시계를 다시 맞춰야 하니까.

그런데 내 불면은 그게 아니다. 내 시계는 고장 나지 않았다. 마음이 멈추려 하지 않을 뿐이다. 이불 속에 누워서도 머리는 내일 할 일, 지난주 나눈 대화, 다음 달 계획을 돌리고 있다. 몸은 이미 누웠는데 마음은 아직 뛰고 있다.

그럴 때 멜라토닌을 아무리 먹어봐야 소용없다. 아직 달리고 있는 사람한테 "이미 집에 도착했어!" 외치는 것과 같다. 들리지 않는다. 들려도 믿지 못한다.

한의학은 불면을 다르게 본다. "몇 시에 잠들었느냐"가 아니라 더 층위 있는 시선으로 본다. 누우면 잠이 안 오는 것 한 가지. 잠들어도 자주 깨고 다시 잠들기 어려운 것 한 가지. 한숨 잤지만 밤새 꿈을 꾸고 아침에 자지 않은 것보다 피곤한 것, 또 한 가지. 각각 한의학에서 부르는 이름이 있고, 각각 온 길이 있다. 어떤 것은 "심신불교(心腎不交, 마음과 콩팥이 서로 통하지 않는 것)"라 하고, 어떤 것은 "위가 편하지 않으면 잠도 편치 않다"라 하고, 또 어떤 것은 "간이 억눌려 불로 변한다"라 한다.

쉬운 말로 옮기면 이렇다. 잠이 안 오는 건 대개 잠의 문제가 아니다. 낮 동안의 삶이 안고 있던 미해결 일들이 밤이 되어 독촉하러 오는 것이다.

족탕은 촌스러워 보이지만 이치는 소박하다. 낮 동안 사람의 기혈은 위로 모인다. 머리에, 눈에, 손에. 뜨거운 물에 발을 담그면 기혈은 아래로 끌려가고 위는 고요해진다. 화를 아래로 내리고, 하루 종일 전력으로 돌아가던 머리를 식히는 것이다. 완전히 끓는 주전자에 더 세게 불을 붙이는 게 아니라 장작을 빼서 천천히 가라앉히는 것처럼.

『황제내경』의 오래된 문장

자료를 뒤지다가 『황제내경』의 한 구절을 만났다. "양기가 다하면 눕고, 음기가 다하면 깬다."

잠은 "전원 끄기"가 아니다. 하루의 양기가 음에게로 돌아가 쉬고 단련하고, 이튿날 다시 밖으로 나가는 것. 잠이란 그 정비의 시간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불면이란 돌아가기를 거부하는 양기다. 아직 밖을 서성이고, 아직 뛰고, 아직 낮의 끝없는 일들을 챙기고 있다.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내가 생각한 것은 의학이 아니었다. 매일 밤의 내 모습이었다. 몸은 침대에 있는데 양기는 아직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는 것.

조금 우습고, 조금 마음 아프기도 하다.

어느 서양인의 실험

그러다 미국 블로거의 영상을 하나 발견했다. 그녀는 스스로를 만성 불면증 환자라 부르며 온갖 방법을 다 시도했다. 멜라토닌, 백색소음, 중량 담요, CBD, 명상 앱. 그리고 긴 글로 총평을 남겼다. 제목은 대략 "나에게 정말 효과가 있었던 것들"이었던 것 같다.

그 글의 최다 공감 댓글은 중국인 사용자의 한마디였다.

"족탕을 해 보세요. 중국인은 천 년 동안 해 왔어요. 먼저 마음을 재우고, 그다음 눈을 재우는 거예요."

그 아래로 외국들의 진지한 답글이 줄을 이었다. "정말 효과 있어요?" "물 온도는 몇 도?" "얼마나 해야 해요?" "나무 통은 어디서 사?"

그 댓글창을 읽으며 가슴 어딘가가 뭉클해졌다. 우리 쪽에서는 족탕이 우스갯거리가 되어 가는데 — "요즘이 어느 세기인데" — 바다 건너에서는 나무 통 어디서 사는지 진지하게 묻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모든 문화가 그런 건지도 모른다. 자기의 오래된 것들은 한 바퀴 세계를 돌아 다시 돌아와야, 비로소 고향에서 다시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산조인, 중국식 "수면제"

중국식 안신 이야기에서 마지막에 반드시 도달하는 약재가 하나 있다. 산조인(산대추씨)이다.

의성이라 불리는 장중경이 2천 년 가까이 전에 쓴 『금궤요략』에는 산조인탕이라는 처방이 있다. "허로하여 번조하여 잠들지 못하는 것"을 다스린다 — 몹시 피곤한데 마음이 조여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 그 주약이 산조인이다. 볶고, 빻고, 달여서 마신다.

어머니는 뒤늦게 산조인 한 봉지를 보내 왔다. 잠이 안 오는 밤엔 한 줌 끓여 마시고, 얼음설탕을 조금 넣으라고.

몇 번 끓여 마셨다. 맛은 연하고 살짝 시어서, 담백한 과일차 같았다. 마시고 곧 졸리지는 않는다. 젤리의 "30분이면 효과"라는 논리와는 다르다. 그런데 며칠 잇달아 마시니 잠드는 게 순해지고, 한밤에 깨는 횟수가 줄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산조인 사포닌의 수면 관련 효과는 현대약리학에서도 연구되고 있고, 중국 약국에는 산조인고, 산조인합제 같은 완제품이 나와 있다. 모두 이 오래된 처방에서 왔다. 전통 방법이 신비한 게 아니다. 다만 느릴 뿐이다.

"30분이면 잠듦"을 약속하지 않는다. 몸을 천천히 원래의 상태로 되돌려 줄 뿐이다. 거기엔 하나의 태도가 있다. 잠은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길러" 되돌리는 것이라는.

그래서 어느 쪽이 좋은가

여기까지 읽고 이렇게 묻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멜라토닌이 좋은가, 족탕이 좋은가.

내 대답은 이렇다. 당신의 불면이 어떤 종류인가에 달렸다.

시차 적응, 생체시계의 어긋남이라면 멜라토닌이 맞는 처방이다. 단기 복용은 문제없다. 시계를 다시 맞추는 것, 그게 이 약의 일이다.

그런데 나 같은 부류라면 — 하루 종일 팽팽하게 당기고, 밤에도 머리가 멈추지 않고, 불안에 깨고 걱정에 잠이 얕다면 — 문제는 시계가 아니라 달리고 있는 사람 그 자체에 있다. 필요한 건 "어두워졌어"라는 외침이 아니라, 달리는 사람이 정말로 멈추는 것이다.

족탕, 산조인차, 자기 전 휴대폰 금지, 아침의 햇빛, 늦지 않은 저녁 식사. 하나하나 떼어 놓고 보면 모두 느리고 눈에 띄지 않는 것들이다. 그러나 모두 같은 하나의 일을 돕고 있다. 낮의 마음이 밤에 자신을 내려놓을 자리를 얻게 하는 것.

『황제내경』에는 더 짧은 구절도 있다. "위가 편치 않으면 잠도 편치 않다." 저녁을 너무 늦게, 너무 많이 먹으면 위가 야근을 하고 사람은 편히 자지 못한다. 2천 년 된 책이 같은 말을 하고 있다. 밤의 불안한 잠의 계산서는 대개 낮에 쳐진다는 것을.

지금

그 나무 대야는 지금도 내 침대 옆에 있다. 매일 담그는 건 아니다 — 야근하고 늦게 들어와 씻고 쓰러지고 싶은 밤도 있다. 그래도 일주일에 서너 번은 물을 끓여 십오 분을 담근다.

서랍 속 멜라토닌 젤리는 아직 반 병 넘게 남아 있다. 출장으로 시차를 넘을 때는 지금도 반 알 먹는다. 그것에는 그것의 쓰임이 있다. 나는 더 이상 그것과 싸우지 않는다.

다만 천천히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다. 어머니가 말한 "먼저 마음을 재우고, 그다음 눈을 재우라"는 말에서 요점은 결국 족탕이 아니었다는 것. 산조인도 아니었다. 그것들은 그저 동작일 뿐이다. 요점은 그 순서다. 마음이 먼저.

마음이 자지 않으면 백 번 발을 담가도 소용없다. 마음이 자면, 대야가 없어도 그냥 눕자마자 빠져드는 밤이 있다.

며칠 전 기온이 떨어져, 대야를 침대 옆으로 옮기며 문득 생각했다. 어린 시절 겨울이 떠올랐다. 어머니가 부엌에서 물을 끓여 할머니의 발을 씻겨 드렸다. 할머니는 의자에 앉아 발을 나무 대야에 담근 채 눈을 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그 옆에 쪼그려 앉아 뜨거운 물을 더해 드렸다.

그때 나는 그게 무엇인지 몰랐다. 지금은 이렇게 생각한다. 그것이 "마음이 잠드는" 모습이 아닐까. 기술이 아니라, 잠들기 전에 자기 자신을 한 걸음의 고요에 맡길 줄 아는 것. 그것이 사람의 모습이 아닐까.

물이 식으면 자러 간다. 내일의 일은, 내일 다시 생각하기로 한다.


당신에게 세 가지 질문

  1. "졸려서" 이불에 들어간 게 아니라 "잘 시간이니까" 들어간 게, 마지막이 언제였나요?
  2. 오늘 밤,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는 십오 분을 스스로에게 준다면 — 그저 발을 담그거나 앉아 있기만 하는 시간 — 시도해 볼 마음이 있나요?
  3. 당신의 "마음"은 밤에 주로 무엇에 바쁜가요? 그 바쁜 일들, 정말 내일 해결되긴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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