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정해우(庖丁解牛):이천 년 전 소 잡던 사람이 몰입의 정의를 먼저 써 놓았다
심리학이 수십 년 걸려 묘사한 '몰입'을 장자는 이천삼백 년 전 소 한 마리로 다 써 버렸다. 십구 년 쓴 칼이 숫돌에 갓 갈은 것 같은 건, 뼈를 찍지 않고 틈을 찾았기 때문.

오늘은 소를 잡는 사람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먼저 저부터. 지난주 수요일 오후, 저는 무언가를 고치고 있었습니다. 고치다가 고개를 들었더니, 창밖의 빛이 책상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옮겨가 있었습니다. 두 시간이 넘게 지나 있었죠. 그동안 휴대폰은 옆에서 몇 번이나 밝아졌지만, 단 한 번도 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나"조차 그곳에 없었습니다 — 저녁 메뉴도, 이 일 끝나면 해야 할 다음 일도 생각하지 않고. 그저 손에 있는 일을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심리학을 공부한 친구에게 말했더니, 친구가 말했습니다. 그거 flow야, 몰입이. 이 단어는 요즘 아주 유행해서 실리콘밸리 사람들은 집중력 훈련에 쓰고, 운동선수들은 '더 존(the zone)'이라고 부른다고요. 헝가리의 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는 평생을 이 문제 연구에 바쳤고, 결론은 조금 직관에 반합니다. 사람이 가장 행복한 순간은 누워 있는 때가 아니라, 어렵지만 해낼 수 있는 일에 온몸으로 몰입해 있는 순간이라는 것 — 자아가 사라지고, 시간이 빨라지고, 끝내고 나면 시작하기 전보다 기운이 더 솟는 순간이요.
제가 말했습니다. 그 상태를 읽어 본 적 있어요. 심리학 책이 아니라 《장자》에서요. 소 잡는 이야기예요.
소 잡기를 춤으로 만든 사람
「양생주」 편에 있는 대목인데, 처음 읽었을 때부터 잊히지 않았습니다. 정(丁)이라는 요리사가 문혜군을 위해 소를 해체하고 있었습니다. 장자의 묘사는 거의 과장에 가깝습니다 — 손으로 어떻게 잡고, 어깨를 어떻게 기대고, 발을 어떻게 딛고, 무릎을 어떻게 대는지, 모든 것이 박자에 맞고; 살과 뼈가 갈라지는 소리까지 가락에 들어맞아, 옛 춤의 걸음에 合하고, 옛 음악의 장단에 맞춘다고 합니다.
문혜군은 넋을 잃고 말했습니다. 아, 훌륭하다. 기술이 어떻게 이 경지에 이르렀는가?
정은 칼을 내려놓고, 훗날 유명해진 한마디를 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도이지, 기술은 이미 지나쳤습니다."
처음 이 대목을 읽었을 때는 이어서 "연습을 많이 해서"라는 말이 나오려니 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그가 말한 것은 소가 그의 눈에 어떻게 변해 갔는가였습니다. 처음 소를 잡을 때는 눈에 통째로 한 마리 소가 보였다. 삼 년 뒤에는 눈에 온전한 소가 보이지 않았다. 지금은 "신(神)으로 만나지 눈으로 보지 않는다. 감관은 멈추고 신만이 나아간다" — 눈으로 보지 않고 신으로 더듬는 것. 감각이 멈추고, 신이 걷습니다. 그는 소 본래의 구조를 따라 큰 틈으로 칼을 넣고, 힘줄을 피하고, 뼈를 돌아갑니다. "천리에 의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절 콱 들게 만드는 말이 나옵니다. 좋은 요리사는 일 년에 한 번 칼을 갈았습니다. 베기 때문입니다. 보통 요리사는 한 달에 한 번 칼을 갈았습니다. 찍기 때문입니다. 정의 칼은 십구 년을 썼고, 수천 마리의 소를 해체했습니다. 그런데도 칼날은 숫돌에서 갓 내려온 것 같았습니다.
왜일까요. "마디에는 틈이 있고, 칼날에는 두께가 없다. 두께 없는 것으로 틈 있는 곳에 들어가면, 칼날은 넉넉히 여유 있게 다닌다." '유인유여(游刃有餘)' — 칼날이 여유 있게 다닌다 — 라는 사자성어가 바로 여기서 나왔습니다. 우리는 이천 년 넘게 남을 칭찬하는 데 이 말을 써 왔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써 왔기에 본래 이것이 칼의 감각이었다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한 달에 한 번 칼을 가는 사람이다
여기서 한참 읽기를 멈췄습니다. 떠오른 것은 소 잡는 광경이 아니라 우리의 일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보통 요리사'입니다. 손에 쥔 일에는 분명 결이 있습니다 — 순서가 있고, 장단이 있고, 빽빽한 부분과 성긴 부분이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찾으려 하지 않습니다. 찍어 버립니다. 완력으로, 밤샘으로, "조금만 더 버티면"으로. 뼈가 꺾이기도 전에 칼이 먼저 감깁니다. 월요일의 그 피로는, 이제 생각해 보면, 대개 일의 피로가 아닙니다. 싸움의 피로입니다 — 일의 결과 씨름하고, 자기 자신과 씨름해서, 힘의 구할 퍼센트를 '찍는 것'에 써 버린 피로.
칙센트미하이는 암벽등반가, 외과의, 기사(棋士)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들이 그 상태에 들어가는 순간을 묘사한 말은 정의 말과 거의 한 자 한 자 같았습니다. 시계를 보지 않게 되고, 옆 사람 소리가 들리지 않고, "나와 이 일 사이에 틈이 없어진다". 심리학이 수십 년과 수천 명의 인터뷰 끝에 도달한 묘사를, 장자는 이천삼백여 년 전에 소 한 마리로 다 써 버렸습니다.
'여유'보다 더 전하고 싶은 두 가지 디테일
첫째. 정은 말합니다. 힘줄과 뼈가 얽힌 곳에 이를 때마다 — "얽힌 데에 이르면 어렵다고 여겨져, 퍽 긴장하여 경계하고, 눈길을 멈추고, 몸짓을 늦추고, 칼을 아주 가볍게 움직인다" — 마음이 콱 조여들고, 각별히 경계하고, 시선이 멈추고, 동작이 느려지고, 칼을 지극히 가볍게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이건 우리가 상상하는 몰입과는 조금 다릅니다. 우리는 몰입을 끝까지 시원하게 흘러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정말 그 상태에 들어가 본 사람은 압니다. 어려운 대목에서는 저절로 느려집니다. 가장 안정적으로 운전하는 사람은 내내 빠르게 달리는 사람이 아니라, 줄여야 할 곳에서 반드시 줄이는 사람입니다. 몰입은 제어를 잃는 것이 아닙니다. 제어가 형태를 바꾸는 것입니다 — '씨름'에서 '따름'으로. 결이 험해지면, 그는 자기 장단을 결에게 맡깁니다.
둘째. 소가 다 풀리면 — "괄약 풀리듯 흐트러져 흙더미가 무너지듯 땅에 쏟아진다" — 정은 그때 무엇을 합니까. 칼을 든 채 한동안 서서, 사방을 둘러보며, 흡족해합니다.
그다음은요?
그다음은 넉 자입니다. "칼을 잘 닦아 감춘다." 칼을 닦아 칼집에 넣는 것.
저는 이 넉 자가 이야기 전체에서 가장 깊은 곳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거기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만족은 받아들이고, 칼은 거두고, 물러납니다. 오늘의 소는 끝났고, 내일은 내일의 소가 있습니다.
심리학은 몰입을 '들어가는 법'으로 말합니다. 장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나오는 법'까지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 한 걸음이야말로 우리 시대에 가장 어려운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받는 '만족'의 많은 것은 누군가 설계해 둔 것입니다 — 숏폼 영상은 십오 초에 한 번, 게임은 한 스테이지에 한 번, 그 쾌감 안에는 갈고리가 박혀 있어서 멈추지 말라고 겁니다. 정의 만족은 하나의 구조 전체를 다 걸어 지나간 뒤에 저절로 자라난 것입니다. 자라면, 그는 칼을 거둡니다. 그는 걸려 있을 수 없습니다. 그는 완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소 잡는 이야기가 어떻게 '생명을 기르는'가
이야기 끝에 문혜군이 말합니다. 훌륭하다. 정의 말을 듣고 양생의 도를 얻었구나.
어렸을 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소 잡는 이야기가 어떻게 양생이 되는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이 편의 제목은 처음부터 「양생주」 — 생명을 기르는 열쇠입니다. 기를 '생'은 헬스장에서 만드는 그 근육이 아니라, 당신의 그 칼입니다. 칼은 뼈를 억지로 자르지 않고, 사람은 삶을 억지로 짊어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빽빽한 나날에도 틈은 있습니다. 양생은 덧셈이 아닙니다 — 무엇을 먹고, 무엇을 보충하고, 무엇을 거느냐가 아니라, 자신을 아껴 쓰는 것. 틈을 찾아, 들어가고, 부러지지 않는 것.
친구가 말했습니다. 몰입 연구의 결론에는 뒷부분이 하나 더 있다고요.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어려움이 아니라, '할 일이 없는 것'과 '마음이 흩어지는 것'이라고. 정이라면 아마 동의할 것입니다. 소가 있을 때는 소를 잡고, 없을 때는 칼을 감춥니다. 그는 줄곧 기분 좋을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매번 틈 속을 걸을 수 있으면, 그걸로 됩니다.
저는 아직 정에게서 멉니다. 지난주 수요일의 두 시간은, 제가 몰입에 들어갔다기보다, 그 일에 마침 결이 있었고, 그날 운이 좋게도 싸우지 않고 한동안 따라갔을 뿐입니다.
칼은 여전히 그 칼입니다. 소도 여전히 그 소입니다.
세 가지 질문을, 당신에게, 그리고 저 자신에게 남깁니다.
하나. 시간이 사라진 것을 깨달은 마지막 순간,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그 일 속의 '틈'은 어디에 있었나요.
둘. 지금 눈앞에 있는 일에서, 뼈인 부분은 어디이고, 사실은 틈 — 아직 보지 못했을 뿐인 — 인 부분은 어디인가요.
셋. 한 가지 일을 끝낸 뒤, 당신은 잠시 서서 흡족해한 다음 칼을 닦아 거두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멈추지 못하고 곧바로 다음 자극을 찾는 사람인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