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

빈 배 — 장자가 말한 아무도 없는 배

오늘 아침 거의 부딪칠 뻔했다가, 장자의 빈 배를 생각했다. 내 모든 분노는 "저기 사람이 있다"는 가정 위에 세워져 있었다.

一一如是
··8분
#장자#빈 배#분노#놓아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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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배 — 장자가 말한 아무도 없는 배

오늘 아침 거의 부딪칠 뻔했다.

자전거로 교차로를 지나가는데, 오른쪽에서 전기자전거가 갑자기 튀어나왔다.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분노가 순식간에 치밀어 올랐다 — 즉각적이고, 뜨겁고, 반사적인.

그리고 장자의 빈 배가 생각났다.


장자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

강을 작은 배로 건너고 있는데, 다른 배가 하류에서 떠내려와 내 배에 부딪힌다.

그 배에 사람이 타고 있으면, "야! 조심해!"라고 소리칠 것이다. 화가 난다. 욕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배에 아무도 없다면 — 그냥 빈 배라면?

화나지 않는다. 장대로 밀어내고 계속 노를 저으면 그만이다.

장자는 말한다. 자신을 비워 세상을 떠돌면, 누가 해칠 수 있겠는가?


나중에 이 일을 되돌아보니, 장자가 말하는 것은 "화를 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한 훈계가 아니었다.

더 미묘한 것을 가리키고 있었다. "내 분노는 누군가가 준 것이 아니다. 내가 만든 것이다."

그 전기자전거가 거의 부딪칠 때, 탄 사람이 누구인지 몰랐다. 출근을 서두르는지, 초보자라 긴장하는지, 그냥 부주의한지. 하지만 나는 순식간에 화가 났다.

화난 이유는 "이 사람이 왜 이래?" — 맞은편에 "고의적인 주체"가 있다고 가정한 것이다.

배에 아무도 없었다면? 바람에 밀려온 것뿐이라면?

아직도 화나 있을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분노의 핵심은 사건 자체가 아니다. 사건에 대한 나의 해석이다.

"맞은편에 누군가 있다" — 고의로 한 사람, 무례한 사람, 나를 무시한 사람. 그 가정이 분노의 연료다.

장자는 "화내지 마"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진부한 교훈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일깨워줄 뿐이다. 당신의 분노는 하나의 이야기 위에 세워져 있다. 그 이야기는 "맞은편에 누군가 있다"고 말한다.

만약 그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면?


물론, 장자는 무감각해지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부딪히면 피하고, 위험하면 소리치고, 자신을 보호하는 것은 본능이고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분노라는 것은 순간이 지나도 오래 남는다. 그 전기자전거는 몇 초 만에 사라졌다. 하지만 내 분노는 하루 종일 타오를 수 있다.

하루 종일 타오르는 불 — 그것은 이미 그 사람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가 누구인지도 모르니까.

그것은 내 마음이 지어낸 이야기에 대해 타오르는 것이다.


"수행"이라 불리는 것 — 그것이 어떤 형태든 — 은 아마 이것을 서서히 보는 것일 것이다.

분노를 느끼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 그 아래에 있는 이야기를 보는 것. "맞은편에 누군가 있다"는 이야기를.

그리고 부드럽게 스스로에게 말한다. 어쩌면 그것은 빈 배였을지도 모른다고.

오늘 저녁, 수면은 고요하다. 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모든 것이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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