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위해 지옥 끝까지 간 바라문의 딸
어젯밤 어머니가 전화하셨습니다. 특별한 일은 없고, 그냥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고요. 전화를 끊고, 염주를 돌리다가 지장경에 나오는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모든 재산을 팔아 일념으로 부처를 외우며 어머니가 어디로 가셨는지 알고자 한 한 딸의 이야기입니다.

어젯밤, 어머니가 전화를 거셨어요.
별일 없다고, 그냥 내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고 하셨어요. 몇 마디 나누다가 어머니가 말씀하셨어요. "혼자 방에만 있지 말고 밖에 좀 나가서 돌아다녀라." 네, 알겠다고 했어요. 전화를 끊고 한참 그 자리에 앉아 있었어요.
손에 들린 염주를 돌리다 보니, 어느새『지장보살본원경』에 나오는 한 편의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바라문녀가 어머니를 구한 이야기요.
이 이야기를 처음 들은 건 사찰에서였어요. 그때는 불교에 갓 입문해서 아무것도 모르던 때라, 다른 분들 따라 법회에 갔는데 스님이 단위에서 지장경을 설하시고, 신도분들은 모두 진지하게 듣고 계셨어요. 저는 뒤에 앉아서 어떤 때는 이해가 되고, 어떤 때는 딴생각을 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이 바라문녀의 이야기는 한 번만 듣고도 머릿속에 남았어요.
아주 오랜 옛날, 바라문 가문에 한 여인이 있었다고 해요. 용모가 단정하고 복덕이 깊었으며, 효성이 지극해서 멀리까지 소문이 나 있었대요. 그런데 그녀의 어머니는 달랐어요. 어머니는 불법을 믿지 않았고, 또 적지 않은 악업을 지으셨다고 해요.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바라문녀는 어머니가 생전에 지은 악업을 알고 있었기에 마음이 몹시 두렵고 불안했어요. 어머니는 돌아가셔서 어디로 가셨을까? 그녀는 가산을 팔아 크게 공양을 올리고, 불탑과 사찰에 널리 공덕을 지으면서, 오직 어머니의 거처를 알 수 있기를 간절히 빌었어요.
그녀는 각화정자재왕여래의 탑사에 이르러 공양을 마치고, 불상 앞에 무릎을 꿇고 울며 이렇게 말했어요. 대략 이런 뜻이었죠.
"부처님이시여, 당신은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제 어머니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말씀해 주세요."
그녀의 울음은 그토록 간절했어요.
그때 한 소리가 들려왔어요. 밖에서 들려온 게 아니라 허공에서 울려오는, 부드럽고도 장엄한 목소리가 그녀에게 말했어요. "너무 슬퍼하지 말아라. 내가 오늘 네 어머니의 거처를 알려주마."
바라문녀이 말했어요. "제게 말씀해 주세요."
그 목소리가 말했어요. "집으로 돌아가서 단정히 앉아 내 이름을 부르면, 네 어머니가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서 한결같이 부처님의 명호를 불렀어요. 밤낮으로 하루를 꼬박 불렀어요.
그러자 자신이 어느 곳에 와 있는 것을 발견했어요.
거기는 인간세상이 아니었어요. 끝이 없이 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었고, 바닷물은 마치 끓어오르듯이 출렁였어요. 바다 안에는 셀 수 없는 악짐승들이 있었고, 야차도 있었으며, 쇠로 된 몸을 가진 존재들이 날아다니고 있었어요. 수많은 남녀가 바다 속에서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하는데, 그들이 겪는 고통이 가지가지였어요. 참혹한 광경이었어요.
그녀는 두려웠어요. 하지만 그녀의 몸은 어떤 해도 입지 않았어요.
무독이라는 귀왕이 다가와서 물었어요. "보살님, 어찌하여 이곳에 오셨나이까?"
그녀가 찾아온 연유를 말했어요. 어머니가 어디 계신지 알고 싶다고.
무독 귀왕이 말해주었어요. "어머님은 이미 이 지옥에서 벗어나셨습니다. 어머님께는 딸이 한 분 계시는데, 그 딸이 공덕을 지으시고 불탑과 사찰에 공양을 올렸기 때문입니다. 어머님뿐만 아니라, 무간지옥에서 함께 고통받던 모든 이들도 이 공덕으로 인해 해탈하게 되었습니다."
바라문녀는 그 말을 듣고 허공에서 절을 올려 감사를 표했어요.
그리고 커다란 서원을 세웠어요.
이렇게 말했어요. "원하옵건대, 내가 미래의 겁이 다하도록 모든 죄로 고통받는 중생을 위해 널리 방편을 베풀어, 그들 모두가 해탈할 수 있게 하리라."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뭐야, 이런 미신적인 이야기가 다 있네. 지옥이니 귀왕이니.
그런데 천천히 깨달았어요. 이 이야기가 사람을 울리는 건, 그 지옥의 묘사가 아니에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딸이 겪는 그 마음이에요. 어머니가 어디로 가셨는지도 모르고, 편하신지도 모르고, 무언가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는 그 애태우는 마음. 그래서 그녀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어요. 가산을 팔고, 삼보에 공양하고, 한결같이 명호를 불렀어요. 정말로 효과가 있다고 확신해서가 아니라, 그것 말고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에요.
그건 제가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을 때와 같아요. 정말로 무릎을 꿇으면 뭔가가 바뀐다고 믿어서가 아니에요. 그것 외에는, 달리 어찌할 도리를 모르기 때문이에요.
가끔 사찰에 가서 등불 하나를 켜거나, 꽃 한 송이를 공양할 때, 옆에 있던 분이 뭘 비냐고 물으실 때가 있어요. 사실 저도 말씀드리기 어려워요. 승진이나 재물을 비는 것도 아니고, 건강을 비는 것도 아니에요. 그냥,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아서요. 그 감각은 아주 소박해요. 어릴 때 길을 잃고서, 인파 속에서 어머니를 사방으로 찾아 헤매던 그 느낌과 비슷해요.
이 이야기 중에서 또 자꾸 생각나는 대목이 있어요.
바라문녀가 그 큰 서원을 세운 뒤, 그녀는 더 이상 예전의 바라문녀가 아니었어요. 그녀가 바로 훗날 우리가 말하는 지장보살이에요.
"지옥이 비워지지 않으면 성불하지 않겠다."
이 말은 너무 유명해요. 유명해서, 많은 경우 이 말을 들어도 별 감흥이 없어요. 하지만 이 이야기 속으로 다시 들어가 보면 어떨까요. 막 어머니를 잃고, 그 깊은 두려움과 슬픔을 겪은 사람이, 어머니가 구원받았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그냥 안도하고 돌아서는 게 아니라, 아직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며 말해요.
"내가 할게요."
저는 그렇게 못 해요.
솔직히 말하면, 사찰에서 공덕함이나 시주 명단을 볼 때 가끔 생각해요. 이 돈이 과연 어디에 쓰이는 걸까? 내가 하는 게 정말로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바라문녀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그녀는 그저 했어요.
아마 신앙이란 원래 "다 이해되고 나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나면 천천히 깨닫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엊그제 SNS에 어떤 친구가 어머니가 입원하셨다는 글을 올렸어요. 대략 이런 내용이었어요. "예전에는 엄마가 참 귀찮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냥 나아주셨으면 좋겠다." 댓글에는 위로하는 말들이 가득했어요. 저도 '좋아요'를 누르려다가, 다시 취소했어요. 이럴 때 '좋아요'를 누르는 건 좀 이상한 것 같아서요.
그런데 뭐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더라고요.
어쩌면 바라문녀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건,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도 괜찮다는 거예요. 그냥 하면 돼요. 할 수 있는 가장 소박한 일을 하면 돼요. 등불 하나를 켜도 좋고, 염불 한 번을 해도 좋고, 전화 한 통을 걸어도 좋고요.
어제 어머니가 전화를 거셨다고 했잖아요. 별일 없다고.
올해 예순일곱이셔요. 건강은 괜찮으신 편인데, 허리가 안 좋으시고, 계단 오르실 때 많이 헐떡이세요.
가끔 생각해요. 만약 어느 날 어머니가 안 계시게 되면, 나는 어떻게 될까.
차마 더는 생각하지 못하겠어요.
하지만 오늘, 지금 이 순간, 어머니는 계세요. 아직 저에게 전화를 거셔서 "별일 없다"고 말씀하실 수 있어요.
그것만으로 충분해요.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예요. 어떤 결론도 없고, "우리가 이렇게저렇게 해야 한다"는 교훈을 정리하고 싶지도 않아요.
그냥 이 마음을 적어두고 싶었을 뿐이에요.
여기까지 읽어주신 당신에게, 몇 가지 질문을 남겨요.
마지막으로 집에 전화한 지 얼마나 되었나요?
쓸모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해야 할 일이라고 느껴서 무언가를 해본 적이 있나요?
만약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내일 이 세상에 없다면, 지금 당장 그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